979~1980년 ‘실버 서스데이(Silver Thursday)’ 사건 팩트 정리
1. 누가, 왜 은을 사들였나
넬슨 벙커 헌트(Nelson Bunker Hunt)와 윌리엄 허버트 헌트(William Herbert Hunt) 형제는 석유 재벌 H.L. 헌트의 아들들이었습니다. 1970년대 초부터 은을 사 모으기 시작한 이들은, 당시 극심했던 인플레이션과 달러 가치 하락에 대한 헤지 수단으로 실물 은을 선호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후 사우디아라비아 왕가 관계자들과 함께 만든 투자회사(International Metals Investment Company, IMIC)를 통해 자금 규모를 더욱 키웠습니다.
이들은 두 가지 방식을 병행했습니다. ① 현물 은을 대량 매입해 스위스 등지에 실물로 보관하고, ② 동시에 뉴욕상품거래소(COMEX)의 은 선물 계약을 대규모로 매수했습니다. 특히 만기 시 현금 정산이 아닌 실물 인수도(delivery)를 고집한 점이 시장에서 유통 가능한 실물량을 더욱 압박하는 요인이 되었습니다.
2. 가격 폭등의 타임라인
| 시점 | 은 시세(온스당) |
|---|---|
| 1970년대 초 | 약 $1.5~2 |
| 1979년 여름 이전 | $10 미만 |
| 1979년 12월 31일 | $34.45 |
| 1980년 1월 18일 (고점) | 약 $48~50 (장중 한때 $50 상회) |
불과 반년 남짓한 기간 동안 가격이 5배 가까이 뛴 셈입니다. 이 무렵 헌트 형제는 COMEX 은 선물 미결제약정의 상당 부분을 보유한 것으로 추정되며, 스위스 보관 실물까지 합치면 세계 유통 가능 은의 상당 비중을 사실상 통제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3. 거래소·규제당국의 개입 — 실패의 결정적 요인
가격이 통제 불능 상태로 치닫자,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와 COMEX(뉴욕상품거래소)가 순차적으로 개입했습니다. 아래는 시간순으로 정리한 핵심 조치들입니다.
| 일자 | 조치 | 내용 |
|---|---|---|
| 1979년 12월 | CFTC, 포지션 한도 논의 개시 | 거래소 지도부와 함께 과도한 미결제약정 집중에 대한 대응 논의 시작 |
| 1980년 1월 7일 | ‘실버 룰(Silver Rule) 7’ 시행 | 1인당 보유 가능한 계약 수 한도를 5,000계약에서 2,000계약으로 축소. 사실상 신규 증거금(마진) 매수를 금지하고, 신규 매수 시 전액 현금 납부를 요구 |
| 1980년 1월 18일 | 증거금(마진) 대폭 인상 | 여러 차례에 걸쳐 증거금 요건이 큰 폭으로 인상 발표됨 |
| 1980년 1월 21일 | ‘청산 전용(Liquidation-Only)’ 거래 규정 | 신규 매수 자체를 금지하고, 오직 기존 포지션을 청산(매도)하는 거래만 허용. 매수 측 수요를 인위적으로 완전히 차단 |
이 조치들이 갖는 의미는 명확합니다. 헌트 형제의 전략은 ‘지속적인 신규 매수를 통해 가격 상승을 유지하고, 상승한 가격을 담보로 추가 신용을 얻어 더 사들이는’ 레버리지 순환 구조에 의존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 포지션 한도 축소(1/7)로 추가 매수 여력 자체가 물리적으로 제한되었고,
- 증거금 인상(1/18)으로 기존 포지션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현금 부담이 급격히 늘었으며,
- 청산 전용 규정(1/21)으로는 아예 매수 주문이 시장에 들어갈 수 없게 되었습니다.
즉 매수 측 수요가 규정으로 원천 차단된 상태에서 매도 압력만 남게 되니, 가격이 떠받쳐지지 못하고 무너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여기에 더해 은행권도 연준의 압박 속에 투기적 목적의 신규 대출을 꺼리기 시작하며 헌트 형제에 대한 신용 공급이 말라붙었습니다.
4. 붕괴: ‘실버 서스데이’ (1980년 3월 27일)
가격 하락이 이어지자 헌트 형제는 연이은 증거금 추가납부(마진콜) 요구에 시달렸습니다. 3월 25~26일, 허버트 헌트는 주요 채권단과 브로커들에게 마진콜을 충당할 현금과 담보가 부족하다고 통보했습니다.
결국 3월 27일(목), 헌트 측이 약 1억 달러 규모의 마진콜을 이행하지 못하는 사태가 벌어졌습니다. 이 소식이 알려지자 은 가격은 하루 만에 $21.62에서 $10.80으로 약 50% 폭락했고, 이날은 이후 ‘실버 서스데이(Silver Thursday)’로 불리게 됩니다. 수많은 투기자들이 함께 청산당했습니다.
5. 시스템 리스크와 긴급 구제
헌트 형제의 대규모 포지션을 취급하던 증권사 베이시 핼시 스튜어트 실즈(Bache Halsey Stuart Shields, 훗날 프루덴셜 증권에 편입)가 막대한 손실 위험에 노출되면서, 이 사태는 개인의 파산을 넘어 금융 시스템 전반의 리스크로 번질 조짐을 보였습니다. 이에 주요 은행 컨소시엄이 헌트 형제에게 약 11억 달러 규모의 긴급 대출을 제공해 즉각적인 시스템 붕괴는 피할 수 있었지만, 그 대가로 헌트 형제는 보유 자산(석유 지분 포함)을 담보로 제공하고 모든 포지션을 청산해야 했습니다.
6. 결말
- 한때 최대 약 70억 달러에 달했던 것으로 평가되던 헌트 형제의 ‘종이 위 자산’은 약 17억 달러 규모의 부채로 뒤바뀌었습니다.
- 넬슨 벙커 헌트는 1988년 개인 파산을 신청했습니다.
- 1988년, 페루 국영 광물회사 민페코(Minpeco S.A.)가 제기한 민사소송에서 헌트 형제는 은 시장을 의도적으로 매점(corner)하려 했다는 혐의로 유죄 취지 배상 판결을 받아 약 1억 3,400만 달러의 손해배상을 지급하게 되었습니다.
- 이 사건을 계기로 CFTC와 각 거래소의 포지션 한도 규제가 이후 더욱 정교하게 제도화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7. 정리: 실패의 핵심은 ‘시장 규정 변경’이었다
헌트 형제의 몰락은 단순히 ‘가격이 너무 올라서 자연스럽게 무너졌다’는 식으로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사실관계를 시간순으로 보면, COMEX가 포지션 한도를 축소하고(1/7), 증거금을 인상하고(1/18), 최종적으로 신규 매수 자체를 금지(1/21)하는 일련의 규정 변경이 가격 정점을 찍은 지 며칠 만에 집중적으로 도입되었고, 이것이 헌트 형제의 레버리지 매수 전략을 구조적으로 무력화시킨 직접적 원인이었습니다. 거래소가 규정 변경을 통해 시장의 매수 측 수요 자체를 인위적으로 차단할 수 있다는 점, 그리고 레버리지에 의존한 매집 전략은 이런 규정 리스크에 취약하다는 점이 이 사건이 남긴 핵심 교훈입니다.
본 포스팅은 역사적 사실 정리를 목적으로 하며, 특정 자산의 매수·매도를 권유하는 투자 자문이 아닙니다.
참고 자료: Wikipedia “Silver Thursday”(SEC 자료 인용), APMEX Learning Guide, BullionByPost, Scottsdale Mint, GoldBroker.com, The Foundation for the Study of Cycles, CMI Gold & Silver, Discovery Alert(2025.12.20)